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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3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근이완제
2022.08.03 URL복사

잠을 잘못자서 근육이 뭉치거나 갑자기 담이 오는 경우에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켜주기 위해 복용하는 약! 바로 ‘근이완제’인데요. 근이완제는 전신 마취 시에도 꼭 필요한 의약품으로, 현대 마취과학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주름을 펴주는 현대 의약품인 ‘보툴리눔 톡신’도 근이완제의 일종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이번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다섯 번째 편에서는 근이완제의 성분이 원주민들이 쓰던 독에서 약이 되기까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보툴리눔 톡신의 역사까지 다뤄보려고 합니다. 근이완제의 역사는 신대륙 발견과 매우 관련이 깊은데요. 그럼 지금 신대륙 발견의 시대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원주민의 독화살에 숨겨진 성분, 큐라레

15세기, 서구 열강은 경쟁하듯 항로 개척에 뛰어들며 16세기에는 스페인이 무력으로 신대륙을 정복합니다. 사실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 과정에서 소수 민족이 흩어져 사는 정글로 들어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스페인 병사들은 총포를 쏴 위치가 금방 노출됐지만, 원주민들은 정글에 침입한 스페인 병사들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독화살을 날렸습니다. 병사들은 독화살을 맞는 순간 그대로 쓰러진 채 숨을 거뒀죠. 이는 원주민들이 사냥할 때도 사용됐는데, 독화살을 맞은 동물들은 스페인 병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바로 잡혔습니다.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유럽으로 전해졌고, 훗날 탐험가들은 원주민들이 덩굴 식물에서 짜낸 즙을 화살에 발라 독화살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730년대, 프랑스의 탐험가 샤를 마리 드 라 콩다민(Charles Marie de La Condamine)은 남아메리카 대륙 북서부의 야오메스(Yaomes)족이 ‘우라리’라고 부르는 화살 독을 구해 유럽에 처음으로 가져갔습니다. 이후 유럽에서는 이 화살독을 ‘큐라레(Curae)’라고 부르며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큐라레는 온몸의 근육들을 마비시켜 결국 호흡근육에도 마비가 오면서 숨을 쉬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었습니다.

큐라레, ‘독’에서 ‘약’이 되다!

1805년, 독일의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와 그의 동료는 아마존강 유역에서 큐라레(Curare) 성분이 함유된 나무의 껍질과 잎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1811년, 아마존에서 가져온 생 큐라레(crude curare)를 이용해 외과 의사인 벤자민 콜린스 브로디(Benjamine Collins Brodie)는 실험을 통해 큐라레를 바른 독침에 숨이 멎더라도, 인공호흡을 하면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1855년, 프랑스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는 큐라레가 작용하는 부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개구리를 이용한 실험을 합니다. 그는 개구리의 왼쪽 다리를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만 묶어 큐라레를 주사했습니다.

그 결과, 큐라레를 주사한 지점은 마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근육이나 신경에 따로 전기 자극을 주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마비가 되는 정확한 부위는 신경이나 근육이 아닌, 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접점(신경근 접합부*)임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이 실험을 통해 큐라레의 특징을 다음의 7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신경근 접합부 : 1858년 Kollicker이 작용 부위를 신경근 접합부로 정의함, 이후 1934년 H.Dale경과 W.Feldberg이 신경근 접합부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나와 근육 수축을 일으키며, 큐라레는 이러한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막는다는 것을 알아냈음

큐라레는 동물 실험에는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 실제 의료에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1938년에 이르러서야 정신과 의사 베넷(Bennett)이 처음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전기 경련 치료에 소량의 큐라레를 사용하게 됩니다. 전기 경련 치료 시 전신에 강한 경련이 일어나 골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때 경련을 완화시키고, 골절을 예방하기 위해 큐라레가 사용된 것입니다.

한편, 1935년에는 큐라레로부터 주효 성분인 순수한 디-튜보큐라린(d-tubocurarine)이 분리되고,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디-튜보큐라린은 수술 환자를 완전히 마비시키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현대까지 다양한 근이완제가 개발되면서 근이완제는 외과 수술의 마취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약이 되었습니다.

근이완제의 다양한 변신, 보툴리눔 톡신

보툴리눔 톡신은 신경 독소의 일종으로, 상한 통조림과 같은 혐기성 조건*에서 생기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 만들어내는 독소를 말합니다. 이는 큐라레처럼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멈추게 해 근육을 마비시키는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8세기 말, 이러한 보툴리눔 톡신을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독일의 의사 유스티누스 케르너(Justinus Kerner)입니다. 당시 독일 남부 지역에서 상한 육류와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이 보툴리눔 중독에 걸리곤 했습니다. 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케르너는 보툴리눔 톡신이 운동신경계의 신호전달을 방해한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적은 용량으로 다양한 신경계 과민 반응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이 독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합니다. 

*혐기성 : 공기 중의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

1968년 안과의사인 앨런 스콧(Alan Scott)은 사시 치료에 처음으로 보툴리눔 톡신을 사용했습니다. 안구 근육이 긴장해 생긴 사시를 교정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후 보툴리눔 톡신의 사용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안검경련(눈 주변 근육이 떨리는 현상) 치료에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7년, 의사였던 카루더스(Carruthers) 부부는 안검경련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얼굴에서 주름이 줄어든 모습을 발견하고, 미용에 적용해도 되겠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이에 1989년, 미국 성형외과 의사인 리처드 클락(Richard E. Clark)이 주름 제거 성형수술을 할 때 신경마비로 생긴 얼굴 비대칭을 보툴리눔 톡신으로 치료해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후, 2002년 미국 FDA가 A형 보툴리눔 톡신을 정식으로 피부주름 개선제로 승인하면서  보툴리눔 톡신은 현재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살펴본 것처럼 근이완제는 신대륙을 발견하던 시대부터 현대까지 그 용도가 점차 다양하게 변화해왔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인류의 산물인데요. 과연 근이완제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요?

오늘 근이완제와 함께한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어떠셨나요?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약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더욱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앞으로도 대웅제약 뉴스룸을 자주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