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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1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진통제
2022.03.21 URL복사

머리가 아프거나 몸살이 났을 때, 배가 아프거나 열이 날 때 여러분은 어떤 약을 찾으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통증을 줄여주고 해열 효과가 있는 진통제를 찾으실 텐데요. 우리 신체는 통증에 매우 민감해 머리가 조금만 아파도 집중력이 떨어져 제대로 일을 하기가 어렵고, 심하면 하루 전체를 망치기도 합니다. 하물며 만성통증을 가지고 있다면? 삶의 질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치겠죠. 그래서 진통제는 인류가 정말 간절하게 원해 탄생한 의약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인류의 통증을 줄이는 진통제를 만드는 과정에 수많은 인류의 희생이 뒤따랐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진통제 탄생에 숨겨진 놀라운 역사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인류의 고통을 삼키는 꽃, 양귀비

인류 문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용했던 진통제 원료가 있습니다. 바로 ‘아편’인데요. 그리스어로 ‘즙’을 뜻하는 아편(opium)은 덜 익은 양귀비 열매에 상처를 냈을 때 나오는 유액을 모아 말린 가루입니다. 통증을 완화하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능이 있죠.

하지만 모든 양귀비에서 아편을 추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양귀비는 품종이 매우 다양한데, 아편을 추출할 수 있는 품종은 파파베르 솜니페룸(Papaver somniferum)과 세티게룸(Setigerum) 입니다. 이들은 각국 정부에서 허가를 받아야 재배할 수 있습니다.

아편이 약물로 쓰인 건 신석기 시대부터라고 추정되는데요. 스위스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양귀비 재배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아편 채취법이 기록된 점토판이 발굴되고, 기원전 1500년 이집트 파피루스에서 양귀비를 약으로 이용했다는 기록과 지중해 키프로스에서 양귀비 씨방이 그려진 아편 흡입용 파이프가 출토된 사례 등이 있어 고대 사람들도 아편의 작용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죠.

이후 수 세기가 지나 아편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16세기에 이르러서인데요. 식물학자 겸 의학자인 파라켈수스(Paracelsus)는 아편으로 환약을 개발하게 됩니다. 그가 개발한 환약은 통증을 멎게 하고 기침을 그치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약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했죠. 뒤이어 17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아편을 적포도주 등의 술에 적정량 녹여 만든 아편팅크(opium tincture=Ludanum)가 개발됐습니다. 아편팅크는 감염병, 생리불순, 원인 불명의 통증 치료에 효과를 보이며 어느새 기적의 약으로 변해있었죠.

하지만 이때부터 서서히 아편의 중독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강력한 효과 덕분에 18~19세기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마구잡이로 아편을 처방했습니다. 이는 결국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환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편 중독’이라는 더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죠.

모르핀, 중독을 부르는 만병통치약(?)

아편의 주요 성분인 모르핀은 1805년 독일의 약제사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담 제르튀르너(Friedrich Wilhelm Adam Serturner)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제르튀르너는 18세기 의사들이 아편을 치료에 이용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는데요. 그는 수많은 시험 끝에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에서 핵심 성분(알카로이드·식물에 들어있는 질소를 포함한 고리형의 화합물)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성분은 고통을 잊게 하고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준다하여,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에서 이름을 딴 ‘모르핀(Morphium)’이라고 명명되었는데요. 이후, 1827년 독일 다름슈타인의 천사약국에서 상업적 생산과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르핀은 기존 아편보다 약 10배 이상의 강력한 효력을 가진 마취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죠. 그렇게 천사약국은 급속히 성장했고, 결국 오늘날 세계 최장수 제약회사인 머크(Merck)로 거듭나게 됩니다.

19세기 중반에는 피하주사기가 개발되면서 모르핀을 주사로 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결국 아편 중독 환자가 급증하는 신호탄이 되었는데요. 이 때부터 사람들은 모르핀의 중독성을 두려워하게 됐고, ‘신이 주신 약’이라고 불리던 모르핀은 서서히 ‘악마의 약’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실제 오늘날까지도 모르핀은 그 뛰어난 효과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진통제보다는 마약이라는 이미지로 더 강하게 남아있죠!

우리는 왜? 진통제인 모르핀에 중독되는가

모르핀은 뇌에 있는 수용체(뇌에서 정보를 수용하는 부위)와 결합해 통증을 멎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 기능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모르핀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우리 뇌는 양귀비에서 분리한 성분이 몸에 들어올 상황에 대비한 수용체(정보가 들어올 빈자리)를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인데요. 인간과 양귀비가 영혼의 단짝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오래전, 이 사실에 의문을 품은 과학자들은 우리 인체에 모르핀과 유사한 물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용체는 그 유사한 물질을 위한 자리일 거라고요.

1975년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교와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독자적으로 연구하던 두 연구진은 마침내 그 유사한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이 물질의 이름은 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엔도르핀(endorphin)’ 인데요! 연구 결과 모르핀과 엔도르핀은 앞머리가 흡사한 구조로 생겨 수용체와 결합했을 때 같은 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엔도르핀은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고 해서 ‘웃음 호르몬’, ‘쾌락 호르몬’으로 불렸는데요. 사실 엔도르핀은 즐거울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아니라 괴로울 때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가깝습니다. 인체가 외상을 입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스스로 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엔도르핀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가끔씩 큰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벌떡 일어나 걷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에 치인다는 것은 몸에 굉장히 큰 스트레스가 되죠. 하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는 뒤따라오는 차에 또 치여 더 크게 다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엔도르핀을 분비하는 것이죠. 한마디로 엔도르핀은 뇌가 만든 천연 진통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진통제! 아스피린 탄생은 효심으로부터?

‘아스피린’은 19세기에 만든 약 중 지금까지도 판매될 만큼 긴 역사를 지닌 진통제죠! 아스피린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버드나무 껍질, 두 번째는 합성염료 기술인데요.

19세기 독일 염료산업은 세계 1위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현재 글로벌 제약회사로 잘 알려진 바이엘(Bayer)이었죠. 당시 염료회사였던 바이엘은 1888년 염료를 생산하며 나온 폐기물(아닐린, Aniline)로 해열 진통제를 개발하는 획기적인 경영을 시도했습니다. 이때 개발한 해열 진통제는 페나세틴(Phenacetin)이었는데요. 때마침 그다음 해인 1889년부터 1892년까지 세계적인 독감으로 해열 진통제의 수요가 급증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바이엘은 이를 디딤돌 삼아 새로운 신약 개발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요.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아스피린’ 입니다. 당시 바이엘에서 근무하던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은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을 분리해 만든 결합물 ‘살리실산(salicylic acid)’을 개선한 진통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살리드산은 맛이 너무 쓰고 위장을 자극하는 단점이 있었는데, 관절염으로 살리드산을 복용하는 아버지가 위장 장애로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좀 더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약을 만들기로 결심했던 것이죠.

이후 호프만은 1897년 같은 연구소의 수석 화학자였던 아서 아이첸그룬(Arthur Eichengrun)과 함께 살리실산을 개량한 ‘아세틸살리실산’ 이라는 새로운 합성 물질을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아세틸살리실산은 살리실산과 같은 진통 약효는 유지되지만, 산성이 약해서 먹기에는 훨씬 편했습니다. 아세틸살리실산은 1899년 ‘아스피린’ 이라는 제품명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선풍적인 인기 끝에 오늘날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진통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아스피린 성분의 역사를 따져보면 무려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버드나무 껍질’과 연관이 있는데요. 버드나무 껍질은 해열, 진통, 소염에 뛰어난 효과가 있어 고대부터 통증을 줄이는 진통제의 원료로 쓰인 역사가 있죠. 기원전 3000년전 쓰인 이집트 파피루스 기록에도 남아있을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도 사용했다고 해요. 일찍이 이 효능을 알고 있었던 선조들의 지혜가 정말 놀랍죠?


지금까지 진통제 모르핀과 아스피린에 관한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진통제는 우리 인류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줬을 뿐 아니라, 약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중요한 약입니다. 모르핀은 식물에서 생약의 유효성분을 추출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아스피린은 현대 의학의 시작이자 현재라고 불리죠!

그럼에도 진통제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더 건강한 삶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과연 어디까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선조들의 지혜를 발판삼아 더 유용한 약을 개발한 것처럼, 오늘날의 연구가 후대인들의 삶에 더욱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