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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6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마취제
2022.05.16 URL복사

마취제가 없던 시절, 수술실은 건물 꼭대기 층에만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는 고통을 참지 못한 환자들의 비명이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수술을 받는 환자에게도, 수술 내내 환자의 비명을 들어야 하는 의사에게도 마취제 없는 수술은 공포 그 자체였을 텐데요.

만약 지금까지 마취제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을까요? 다행히 인류는 다양한 실험과 검증을 거치며 마취제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마취제는 외과수술의 역사와 인류의 발전에 큰 획을 긋게 되는데요.

오늘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네 번째 편에서는 19세기 의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불리는 마취제의 발달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마취제 없는 외과수술을 받느니, 죽는 게 낫다?

19세기 초, 마취제가 없던 시절에는 외과수술을 응급으로 처리했습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술에 취하게 하거나 최면술을 쓰기도 하고, 환자의 경동맥을 압박해 실신시키거나, 둔기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는 어처구니없는 방법까지 동원했습니다. 수술 중에는 환자들이 도망가거나 움직이지 못하도록 환자의 팔다리를 꽉 잡는 힘 좋은 사람들도 필요했습니다. 환자들은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쇼크로 사망하거나, 수술 도중 쇼크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수술을 앞두고 자살하는 사람도 점점 늘었습니다.

환자들이 고통받는 시간을 줄이려면 의사들도 손이 빨라야 했습니다. 공개 수술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시계로 수술 속도를 재기도 했죠. 관련한 충격적인 일화도 있는데요. 런던대학교 병원 소속 의사 로버트 리스턴(Robert Liston) 박사는 공개 수술에서 급하게 다리를 절단하다 환자의 고환까지 잘라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수술에서는, 수술을 돕던 조수의 손가락을 자르는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마취제가 개발되기 이전의 수술은 한마디로 ‘공포’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동양의 마취제, 마비산과 통선산

그렇다면, 마취제가 개발되기 이전의 동양은 어땠을까요? 삼국지에는 후한 말 의사 화타(華陀)가 마비산(痲沸散)이라 불린 마취제로 외과수술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화타는 환자의 오장육부에 침이나 탕약이 아무런 효과가 없을 때 수술을 했는데요. 환자가 감각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비산 가루를 술에 타서 마시게 한 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수술을 받은 환자는 4~5일 만에 통증이 완화되고, 약 한 달 만에 일어나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해요. 마비산의 처방전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대마초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18세기 에도 시대에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靑洲)라는 의사가 마비산을 롤모델로 삼아 마취제 연구를 시작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네덜란드 의학을 공부한 하나오카는 20년 연구 끝에 통선산(通仙散)이라는 마취제를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 아내를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진행했는데요. 결국 어머니는 사망하고, 아내는 시력을 잃게 됩니다. 가족들의 희생으로 주요 성분의 용량을 조절해 완성한 통선산은 처음으로 수술에서 사용되는데요, 60살 여성의 유방종양 제거 수술에서였습니다. 이 수술은 훗날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로 기록되는데요. 워낙 말기 상태라 환자는 4개월 후 사망했으나, 수술 자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150여건의 유방종양 수술에 통선산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웃음 가스’ 라는 마취제, 들어보셨나요?

웃음 가스(Laughing Gas)로 불리는 아산화질소(Nitrous oxide)는 1775년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가 최초로 합성했는데요. 그 당시, 기술이 부족하여 제대로 정제되지 않아 독성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밝혀낸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입니다. 그는 정제된 아산화질소는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가스를 흡입했는데, 기분이 좋아지면서 자극과 통증에 둔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아산화질소를 ‘웃음 가스’라고 이름 짓고 감각을 무디게 만들기에 마취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죠. 하지만 당시 아산화질소는 의료용이 아닌 오락용으로 자주 이용됐는데요. 젊은이들은 파티를 즐기기 위해 웃음 가스를 환각제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1844년의 어느 날,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열린 파티 ‘웃음 가스 쇼’에 방문한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Horace wells)는 웃음 가스를 마신 사람이 다리를 다쳐 피를 흘리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웃음 가스를 치과 수술의 마취제로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다음 날 웃음 가스를 들이마시고, 자신의 사랑니를 뽑아 본 웰스는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엄청난 발견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외과 의사들을 모아놓고 마취제 공개실험까지 여는데요. 하지만 아산화질소의 양이 적었는지 아니면 마취효과가 돌기 전에 서둘러 발치를 한 탓인지 환자는 아프다고 고함을 질렀고, 그 바람에 이 공개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웰스는 웃음거리가 돼 치과의사마저 그만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난 1870년 미국 치과협회로부터 최초의 마취제 발견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에테르, 외과수술에 혁신을 일으킨 흡입마취제!

웰스의 공개 실험은 비록 실패했지만, 웰스의 마취제 실험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이가 있습니다. 바로 그의 제자인 윌리엄 모턴(William Thomas Green Morton)인데요. 모턴은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Ether)를 마취제로 이용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하버드에서 화학을 가르치던 찰스 잭슨(Charles Jackson)의 권유로 에테르 마취 효과를 시험하게 됩니다. 이후 1846년 매사추세츠 병원에서 세계 최초로 솜에 묻힌 에테르를 흡입시켜 의식을 잃게 한 뒤 목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하죠. 이 수술로 에테르는 우수한 마취제로 널리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에테르는 발화점이 낮아 작은 열과 스파크에도 쉽게 폭발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요. 에테르의 인화성으로 인한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모턴의 평판은 급격히 나빠지게 됩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분만을 도운 클로로폼

에테르를 마취제로 이용한 수술법은 영국에도 전파되었습니다. 하지만 에테르는 영국에서 또 다른 이유로 외면 받는데요.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James Young Simpson)은 분만 시 산모가 느끼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에테르를 사용해봤지만, 산모들에게서 심한 구토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에테르보다 부작용은 적고 효과는 우수한 다른 마취제 성분을 찾아 나서죠! 그 결과 클로로폼(Chloroform)의 마취 효과를 발견하고, 이를 왕립 병원에서 외과수술에 이용한 실험에 성공합니다. 

그는 클로로폼으로 무통 분만법까지 개발하는데요. 영국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1853년 레오폴드(Leopold) 왕자와 1857년 베아트리스(Beatrice) 공주를 무통 분만법으로 낳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클로로폼은 빠르게 보급되었습니다. 그러나 1937년 클로로폼이 간 손상과 심실세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현재는 마취제로 잘 사용하지 않고 살충제, 곰팡이 제거제 등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마취제의 발전은 계속 된다! 수면마취제의 개발

이후 정맥주사로 수면마취가 가능한 티오펜탈(Thiopental sodium)이 개발되는데요. 티오펜탈은 수면 작용 시간이 아주 짧아 주사약을 투여하면 30~45초 만에 마취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약물 투입을 중단하면 5~10분 만에 의식이 돌아올 정도로 회복도 빨랐죠. 그러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술을 할 때는 마취 효과가 너무 짧아 티오펜탈을 먼저 주사하고 5분 안에 흡입마취로 깊은 마취를 유도하는 식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후 수면마취제로 각각 1976년과 1983년에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이 개발됐습니다. 미다졸람은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짧은 시간 동안 지속돼 오늘날 내시경 검사나 수술 전의 진정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로포폴은 수술이나 검사 시 마취를 위해 사용되거나,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사용되는데요. 다른 마취제와 달리 빠르게 회복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환각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어 수면마취제임에도 마약류로 지정해 오남용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신체 일부만 마취가 필요할 때, 국소마취제

지금까지의 마취제는 흡입이나 정맥 주사의 형태였기 때문에 전신 마취만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안과나 치과수술과 같은 신체 일부에만 마취가 필요한 경우에는 국소 마취가 더 적합했는데요. 

1884년, 오스트리아 안과의사 칼 콜러(Carl koller)는 코카인이 닿은 혓바닥에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응용해 코카인에 국소마취 작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코카인을 녹인 수용액을 만들어 동물과 동료들, 그리고 자신의 눈에 실험해 코카인에 국소마취제의 효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죠. 이후 코카인은 백내장 수술뿐 아니라 발치수술 등 여러 영역의 국소마취제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코카인은 중독성이 강한 마약인데다 고체라서 농도를 맞추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세월이 흐르며 프로카인, 리도카인 등 안전한 국소마취제로 대체됐습니다.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네 번째 시간에는 ‘마취제’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날 마취제가 없었더라면 과연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요! 이처럼 마취제는 통증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했을 뿐 아니라, 근현대 의학 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오늘의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어떠셨나요?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약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더욱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앞으로도 대웅제약 뉴스룸을 자주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