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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8
[역사로 알아보는 약이야기] 말라리아 치료제
2022.02.18 URL복사

여러분은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인 동물이 ‘모기’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인류가 출현한 이래 모기에 물려 사망한 사람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인류의 절반에 달합니다.

2000년 설립된 미국 게이츠 재단은 매년 연례 보고서를 통해 인류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동물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부동의 1위가 바로 모기입니다. 2000년부터 모기에 물려 사망한 누적 인구수만 200만 명에 달할 정도인데요.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한 ‘인간’에 의해 사망한 인구가 47만 5,000여 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세상에 모기만큼 위험한 동물은 없어 보이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 모기는 최소 15가지 이상의 질병을 전염시키며 인류의 역사를 180도 바꿔 놓았는데요. 널리 알려진 ‘말라리아(malaria)’가 그중 하나입니다.

오늘 ‘역사로 알아보는 약 이야기’ 두 번째 편에서는 바로 인간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 말라리아와 치료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함께,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술인 진토닉(Gin Tonic)이 말라리아를 치료하기 위해 군사들에게 제공한 술이었다는 사실, 말라리아라는 이름이 이탈리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등 흥미로운 사례들도 소개해 드릴 예정이니 놓치지 말고 끝까지 읽어주세요!

‘말라리아’에 대해 잘 알고 계시나요?

말라리아는 모기가 인간에게 옮기는 질병입니다. 걸리면 고열, 오열, 심한 근육통 증상이 일어나는데요. 얼마 동안 시간 간격을 두고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리며 자주 의식을 잃다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아주 무서운 질병입니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매개체는 ‘얼룩날개모기(Anopheles)’입니다. 임신한 얼룩날개모기가 사람의 피를 빠는 과정에서 침 샘에 숨어 있던 원충이 혈액으로 들어가는데요. 원충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단세포 크기로, 사람의 피에 감쪽같이 숨어듭니다. 혈액에 침투해 간으로 이동하고 증식한 다음, 적혈구에서 기생하며 헤모글로빈을 먹고 살 원충들은 복제를 통해 새로운 기생충을 만들며 번식하는데요. 복제가 끝날 때마다 적혈구를 파괴한 뒤 새로운 적혈구를 찾습니다. 이때 손상된 헤모글로빈이 독성 물질로 변해 혈액으로 흘러가면 고열 증상이 나타나는 거죠! 그러다 기생충이 새로운 적혈구를 찾아 기생을 시작하면 다시 열이 내리며 말라리아도 새로운 주기를 시작합니다.

바티칸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말라리아’

인류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3대 감염성 질병에는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가 있습니다. 이중 말라리아는 해마다 5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아주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투탕카멘왕이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다는 학설이 있을 정도로 말라리아는 아주 오랜 세월 인류를 괴롭혀 왔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요. 조선 시대 기록된 문서들을 살펴보면 말라리아를 ‘학질(瘧疾)’로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그 증상도 자세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오늘날 말라리아가 주로 발병하는 곳은 가나, 케냐, 말라위 같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보고되고 있는데요.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2019년 발병한 말라리아 건수는 2억 2,900만 건이며 그중 94%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라리아는 병명이 ‘나쁜 공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malaria’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과거 로마 등지와 유럽에서 자주 발생했던 질병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늪지대의 공기가 나빠 질병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오래전 이탈리아 로마 주변에는 모기가 번식하기에 알맞은 늪지대가 많았고, 그 일대에는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역병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서로마 제국 말기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한 훈족이 로마 장악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철수한 이유가 말라리아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주장도 있죠. 수많은 병사가 말라리아에 걸려 전력을 손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 입장에서는 말라리아가 나라를 지켜준 셈이었죠!

그러나 가톨릭 교회에는 커다란 비극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교황국 바티칸에서는 각국 추기경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 회의 ‘콘클라베(Conclave)’가 열립니다. 이때 추기경들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성당에서만 지내야 하죠. 문제는 바티칸이 말라리아가 발병하기 쉬운 환경이었다는 것인데요. 이 기간 동안 바티칸에서는 말라리아에 의한 수많은 사망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 바티칸의 10세기 이후 기록물에 따르면 교황 약 130명 가운데 22명이 말라리아 또는 열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세계 인류사를 바꾼 ‘키나 나무’ 껍질

가시나무속 식물에 속하는 키나 나무(Quinine)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의 원료입니다!

1633년 아우구스티누스 교단의 한 수도사는 키나 나무를 ‘열 나무’로 기록했는데요. 나무를 말려 가루로 만들고 물에 타 음료 형태로 섭취하면 열과 삼일열이 낫는다고 해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삼일열은 간헐적으로 열이 올랐다 내리는 증상을 의미하는데요. 이는 말라리아 증상에 속합니다.

16세기 스페인 예수회 선교사들은 페루에서 키나 나무 효능을 발견해 말라리아 치료제로 도입했습니다. 키나 나무를 대량으로 스페인에 들여와 판매를 시작하고자 했죠. 이를 틈탄 남아메리카 예수회 선교사들이 키나 나무 수입과 유통을 모두 장악하며 한때 이 나무는 ‘예수회의 껍질’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기적의 나무는 훗날 영국 왕 찰스 2세와 프랑스 왕 루이 14세 아들의 생명을 살렸고, 중국 역사상 위대한 군주로 꼽히는 강희제의 목숨까지 구하며 청 왕조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습니다.

키나 나무가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적인 것은 ‘퀴닌’이라는 물질 때문인데요. 퀴닌은 사람 몸속으로 들어온 말라리아 원충이 헤모글로빈을 소화하고 분해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몸속의 말라리아 원충 증식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퀴닌의 효능이 확실해지자, 영국은 인도 식민 지배에 키나 나무를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모기 서식지가 많은 인도에서 군사들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도록 군사들이 퀴닌을 쉽게 섭취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인데요. 기사 초반에 여러분께 말씀드린 ‘진토닉’이 바로 그것입니다. 키나 나무 가루는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군사들은 톡 쏘는 토닉 워터에 가루를 섞어 먹었습니다. 하지만 쓴맛으로 마시기 어려워지자, 진과 라임, 설탕을 섞어 아예 칵테일처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죠.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술 진토닉의 기원이 말라리아 치료제와 연관돼 있다니!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죠!

약효 성분 분리 성공으로 부족한 ‘퀴닌’ 채우기!

유럽 곳곳에 키나 나무껍질의 효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키나 나무가 귀해졌습니다. 수만 그루의 나무가 짧은 시간 동안 벌목됐죠. 유럽에서는 직접 묘목을 재배하려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그마저 실패했습니다. 결국, 시중에는 품질이 낮은 제품과 가짜가 유통됐습니다.

이에 키나 나무에서 약효 성분만 따로 분리하거나, 약효 성분을 인공적으로 합성하자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1820년 드디어 퀴닌 성분 분리에 성공하는데요. 이를 성공시킨 사람은 프랑스 연구가 피에르 조제프 펠레티어(Pierre Joseph Pelletier)조제프 카방투(Joseph Caventou)입니다. 이때부터 말라리아 치료제는 키나 나무껍질 가루가 아닌 순수한 퀴닌 결정으로 만들게 됐죠!

퀴닌 합성에 성공한 것은 키나 나무에서 퀴닌 성분을 분리한 후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서였습니다. 1942년 연구를 시작해 2년 만에 최초로 퀴닌 인공 합성에 성공한 사람은 로버트 우드워드(Robert Burns Woodward)라는 학자인데요. 그 후로도 복잡한 화합물 합성에 잇따라 성공하며 1965년 노벨 화학상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드워드가 만든 퀴닌 합성법도 완벽하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퀴닌을 대량 생산을 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실제 지금까지도 인공 합성한 퀴닌의 생산량은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는데요. 대신 ‘퀴나크린’, ‘클로로퀸’, ‘메플로퀸’ 등 퀴닌 구조를 토대로 좀 더 간단하게 만들어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 화합물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물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떨어지고, 내성이 생긴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약으로 달여먹은 ‘개똥쑥’

1960년대 말 중국에는 말라리아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당시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하던 클로로퀸에 저항성을 가진 말라리아가 등장하면서 중국은 신약 개발이 더욱 절실했습니다.

이에 1967년 중국 정부는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한 ‘Project 523’를 시작하는데요. 1969년 중국인 과학자 투유유(屠呦呦)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는 치료제 실마리를 찾고자 옛 의학서 처방 수십 권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갈홍이 쓴 약학책을 통해 ‘개똥쑥’을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찬물에 담가 즙을 낸다’라는 내용을 보고 에테르(Ether)를 이용한 저온 추출법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하며 연구에 성공하죠. 이렇게 얻어낸 치료 물질로 1986년에는 말라리아 치료 물질로 정부 승인을 받아내는데요. 이 물질이 바로 ‘아르테미시닌’ 입니다. 중국은 아르테미시닌 덕분에 1990년부터 말라리아 감염에 의한 사망자 수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고, 투유유는 중국 본토 출신 최초로 노벨상까지 거머쥡니다!

드디어 승인받은 말라리아 백신

말라리아는 기생충 감염이라는 질병 특성으로 바이러스처럼 백신을 만드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상 처음으로 말라리아 백신 사용을 승인했다는 사실은 역사상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2019년 승인받은 RTS,S 백신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동 약 80만 명에게 시범 접종한 결과 말라리아 치료제와 함께 복용할 때만 효과 높아진다고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말라리아 발병 원인과 치료제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실제로 모기는 지금도 그 개체 수를 늘려가며 인류의 소중한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불편한 진실은 모기가 질병 전달자가 되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데 인간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인류는 생존과 편리한 생활을 위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나무를 마구잡이로 벌목하고, 전쟁, 무역, 여행 등 인간 중심적 활동을 펼쳐왔는데요. 이러한 활동은 모기가 서식지를 넓혀가며 고도의 질병 매개체로 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현재 지구 온난화로 모기 서식지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니 말이죠. 기후 위기 상황에서는 예전처럼 다시 말라리아가 창궐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는 아프리카 대륙 어느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시 말라리아 발생국에 속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말라리아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현재 승인받은 말라리아 백신도 아직 완벽한 치료제라고 할 수 없죠! 완벽한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말라리아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일상 속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를 위해 대웅제약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